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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코드 all :
디스크수 : 1DISC
화면비율 : 4:3 LETTER BOX
음성트랙 : DOLBY DIGITAL STEREO
상품더빙 : 영어
상품자막 :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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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 전투왕, 해방 전쟁에서 정복 전쟁을 선포 !
기원전 332년. 페르시아 제국은 소 아시아를 거쳐 그리스 식민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젊은 알렉산더와 그가 이끄는 무적 동맹군인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부대는 그리스를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시키고 페르시아 제국을 원래 자신들의 땅으로 되돌려 보내려 하고 있었다.
평야에서 10 : 1 열세를 극복한 전략 !
막강한 군사력의 다리우스 3세는 페르시아 국경을 넘은 그리스 부대의 전투력에는 이미 놀란 상태였지만,
가우가멜라의 작은 마을에 있는 티그리스 강 주변의 넓은 평야에서 침략자 알렉산더를 소탕하기로 마음 먹는다.
사십만 여 병력에 사만여 명의 기마부대 외에 대형 낫이 달린 수백 여 대의 전차를 가진 페르시아 부대와 4만5천명의 기마병과 보병뿐인 알렉산더와의 전투에서 이기는 전략은 ?
미래의 전투 방식 자체를 변화시킨 전략 !
마케도니아 밀집대형과‘사리사스’라고 불리던 18 피트 길이의 무거운 창을 사용한 알렉산더의 새롭고 치명적인 전투방식은 고대 세계를 정복할 수 있도록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청동기 시대의 전투 기법에서, 철기 시대 전투 방식을 예고한 것이었다.
알렉산더의 패배라면, 페르시아가 지중해를 점령하여 서양 문명의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그리스를 대신하게 되고 그러면 어떤 역사가.….
줄거리(수록곡)
전쟁으로 보는 세계사 / 알렉산더 대왕의 가우가멜라 전투
때는 기원전 332년. 수 세대 전, 침략국 페르시아 제국은 소 아시아를 거쳐 그리스 식민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젊은 알렉산더와 그가 이끄는 무적 동맹군인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부대는 그리스를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시키고 페르시아 제국을 원래 자신들의 땅으로 되돌려 보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 차례의 승리 후 23세의 전투왕은 그저 해방을 목적으로 한 전쟁이 아닌 정복을 위한 전쟁을 선포하기로 한다. 그의 부대는 당시 전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고 있던 다리우스 3세의 부대들을 무찌르기 위해 페르시아 국경을 넘게 된다. 다리우스는 그리스 부대의 전투력에 이미 놀란 상태였다. 두 번의 짧은 전투 후, 다리우스와 그의 부대는 가우가멜라의 작은 마을에 있는 티그리스 강 주변의 넓은 평야를 전투 장소로 고른다.
바로 여기에서 알렉산더와 그 침략자들을 소탕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었다.
전 세계에서 최정예 부대로 인정받던 다리우스 3세의 페르시아 부대는 사십만 여 병력에 사만여 명의 기마부대 외에 사람을 반으로 가를 수 있는 무시무시한 큰 낫이 달린 수백 여 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겨우 4만5천명의 기마병과 보병뿐이어서 10대 1의 전투를 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탁월한 전투 전략을 수 차례 구사하여 페르시아군을 놀래키고, 미래의 전투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게 된다. 알렉산더가 구사했던 전투 전략의 중심은 방패를 무기 삼아 모든 방향의 공격에서(심지어 공중 공격까지 포함하여) 자신을 보호하는 촘촘히 결집된 기갑 보병 부대인 마케도니아 밀집대형(Macedonian phalanx)으로 압축된다. 이들은 또한 ‘사리사스(sarissas)’라고 불리던 18 피트 길이의 무거운 창을 들고 다녔는데, 이 창은 적군이 이보다 길이가 짧은 무기로 자신들의 털끝마저도 건드리기 전에 이미 적군을 무찌를 수 있도록 하였다.
알렉산더의 전투 접근 방식은 고대 세계를 정복할 수 있도록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청동기 시대의 전투 기법의 종말을 전하고, 철기 시대 전투 기법인 보다 새롭고 치명적인 전투 방식을 예고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위험 요소도 물론 있었다. 만약 알렉산더가 패배했었더라면, 페르시아군이 지중해를 점령하여 서양 문명 발전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문화국가 중 하나로 그리스를 대신하여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