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세계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살아남기
쏜애플 두 번째 앨범 ^이상기후^
다른 사과다. 이 사과가 4년 전의 사과와 얼마나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는 것은 참으로 구차하다. 그저 가득 베어 물고, 또 베어 물고.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감성의 가사와 몽환적인 사운드를 가진 밴드 쏜애플(THORNAPPLE)은 2010년 데뷔 앨범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를 별도의 홍보 없이 ^음악 그 자체의 힘^만으로 자신들이 설 땅을 굳건히 만들어 냈다. 주축 멤버들의 입대로 3년간 중지됐던 활동을 재개한 2013년, 쏜애플은 ^뷰티풀 민트 라이프^와 M.net ^밴드의 시대^ 출연으로 대중들과 음악 관계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그 관심은 해피로봇 레코드와의 계약으로 이어졌다. 이후 ^지산 월드 락 페스티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등 대형 페스티벌 출연은 물론, 독특한 연출과 구성을 통해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단독 콘서트를 연이어 매진시키기에 이르렀다. 단연, 현재 씬에서 가장 주목받는 밴드임에 분명한 쏜애플. 이들이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는 영리함이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적 질료를 토대로 고유의 형상을 구축한다. 치열한 낱말들은 뜨거운 피의 온도로 청자에게 스며든다. 이는 냉소와 무관심이 ^멋짐^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인 지금, 우리가 쏜애플의 음악을 듣고 이들에게 깊이 투영되는 이유다. 4년 만의 신작, 결코 가볍지 않은 두 번째 앨범, ^이상기후^와 함께 쏜애플이 돌아온다.
피의 온도로 쓰여진 열 알의 가시사과
한꺼번에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폭발력, 갈증과 열망으로 가득 찬 쏜애플의 음악을 음반 한 장에 담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프로듀서 서상은과의 만남은 이러한 쏜애플의 음악이 음반이라는 매개체 안에서 최대한으로 표현되도록 정제되었다.
쏜애플 2집 ^이상기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생존^이다. 모든 곡들이 한 단어 아래에서 다각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장중하고, 과잉된 사운드의 인트로 트랙을 기대했을 청자가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건, 극한의 미니멀리즘으로 표현된 ^남극^이다. 앨범의 프롤로그라 할 수 있는 이 곡은 담담한 목소리로 치열한 단어들을 뱉어낸다. 이어서 라이브가 기대되는 ^시퍼런 봄^에서는 이전과 다른 쏜애플의 가사와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를 느낄 수 있다. 무대에서 선보인 바 있는 곡 ^피난^과 ^boy meets girl^의 뻔한 주제를 예리한 통찰력으로 노래하는 ^백치^까지. 우리는 이들이 결코 동어반복을 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2013년, 민트페이퍼 시리즈 앨범 ^bright #1^에 수록된 ^살아있는 너의 밤^은 재녹음을 거쳐 특유의 그로테스크함이 한층 농밀해졌으며, 타이틀 곡인 ^낯선 열대^는 쏜애플이 그동안 거쳐왔던 변증이 축적된 종합적 결과물임을 증명한다. 싸이키델릭한 사운드 텍스쳐와 드라마틱한 전개, 매혹적인 멜로디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을 갈구하는 노랫말까지, 쏜애플의 매력이 극대화되어 녹아 들어있다. 그 뒤를 잇는 ^암실^은 이번 앨범에서 가장 실험적인 곡으로, 이들의 광기와 우울, 문학성의 극한을 보여준다. 앨범 후반부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베란다^에서는 덥(dub)이라는 상상치도 못한 낯선 소재 위에 쏜애플의 익숙한 정서가 흐른다. 내적 완성도에 있어 최고조에 이른 곡이다. 내가 지금 여기에 살아있음을 노래하는 ^아지랑이^와 새로운 송가가 될 ^물가의 라이온^까지, 2집 ^이상기후^는 지금 쏜애플의 생존을 이야기한다.
거대한 세계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살아남기
앞서 말했듯 ^이상기후^는 일종의 콘셉트 앨범이다. 하나의 주제로 쓰인 단편 소설집이자, 각각의 챕터가 유기적으로 얽혀 직조되는 하나의 큰 ^이야기^이다. 곡의 훅이 훌륭하다거나, 음악 구조적 유사성을 통일성 있게 가져가는 앨범은 많다. 그런 앨범 또한 훌륭한 앨범이다. 하지만 지금 밴드 씬에서 이렇게 ^촌스러울^ 정도로 하나의 주제를 백퍼센트의 에너지로 통렬하게 노래하는 밴드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렇게 백치와도 같은 이들은 이 거대한 세계에서 ^생존^을 웅변한다. 여기에서 ^생존^이란 어떤 의미도, 가치적 잣대도 들이밀 수 없는, ^그저 살아있음^이다. 던져진 존재, 생(生) 그 자체의 숭고.
익숙했던 것들이 노스탤지어의 저편으로 저물어가면서 우리가 흘러 들어오게 된 낯선 열대, 나쁜 날씨, ^이상기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식어버린 말을 하지 말고, 그저 살아남기.
수록곡
DISC01. 2집 - 이상기후
01. 남극
02. 시퍼런 봄
03. 피난
04. 백치
05. 살아있는 너의 밤
06. 낯선 열대
07. 암실
08. 베란다
09. 아지랑이
10. 물가의 라이온